부산남산동 국어과외







부산남산동 국어과외에서 확인한 시적 화자 판단의 출발점
부산남산동과외 수업에서 한 학생이 문학 문제의 정답을 맞힌 답안지를 내밀었다. 문제는 짧은 시와 보기를 결합해 시적 화자가 누구인지 작품의 단서로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답만 맞았을 뿐, 풀이 과정을 거꾸로 살펴보니 화자를 판단한 근거가 우연히 정답과 겹친 상황이었다.
창문에 기대어
오늘도 빈 운동장을 본다.
아이들이 떠난 뒤의 흙에는
내 이름 대신 발자국만 남았다.
나는 종례 종이 울리기 전
낡은 의자를 한 번 더 닦는다.
학생은 ‘아이들이 떠난 뒤’와 ‘종례’에 밑줄을 긋고, 화자를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보기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었다.
- ① 운동장을 바라보는 학생의 목소리이다.
- ② 아이들이 떠난 뒤 교실을 정리하는 사람의 목소리이다.
- ③ 학교에 얽힌 과거를 회상하는 외부 관찰자의 목소리이다.
- ④ 운동장을 싫어하는 아이의 독백이다.
학생은 ②를 골랐다. “아이들이 떠난 뒤에도 의자를 닦으니까 선생님 같다”고 설명했다. 남산중학교와 금정중학교가 있는 생활권에서 진행한 이 장면의 핵심은 ‘선생님’이라는 직업명을 맞히는 데 있지 않았다. 시 안에서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표현 하나하나가 어떤 인물을 가리키는지 확인하는 데 있었다.
정답에서 거꾸로 찾아간 갈림길
학생에게 왜 ①이 아닌지 다시 물었을 때, 처음에는 “학생도 운동장을 볼 수 있다”고 답했다. 이어 ‘낡은 의자를 한 번 더 닦는다’에서 ‘닦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게 하자, 학생은 “깨끗하게 만드는 행동”이라고만 메모했다. 이때 학생이 실제로 한 판단은 ‘의자를 닦는 사람은 선생님일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풀이를 답안의 끝에서부터 되짚어 보니 가장 먼저 어긋난 곳은 마지막 선택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떠난 뒤’와 ‘종례’라는 표현을 읽으면서도, ‘닦는다’의 사전 뜻만 적용하고 그 행동이 놓인 상황을 연결하지 않은 것이 최초의 오류였다. 그래서 화자의 행동을 작품 속 역할과 연결하지 못한 채, 학교에 있을 법한 사람을 막연히 떠올렸다.
한 문장의 뜻을 주변 단서에 붙여 보기
교정은 시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분석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지 않았다. 이미 표시한 ‘아이들이 떠난 뒤’, ‘종례’, ‘낡은 의자’는 그대로 두고, ‘한 번 더 닦는다’ 옆에만 누가, 언제, 왜 이 행동을 하는가를 적었다. 그러자 ‘아이들이 떠난 뒤’라는 시간과 ‘종례 전’이라는 시간이 겹쳤다. 화자는 수업을 받는 학생이라기보다, 아이들이 사용한 교실을 정리하는 사람으로 드러났다.
학생은 답안의 근거를 다음처럼 고쳤다. “화자는 아이들이 떠난 뒤에도 교실에 남아 의자를 닦는다. ‘종례’와 ‘아이들이 떠난 뒤’라는 상황이 화자를 학교를 정리하는 사람으로 보여 주므로 ②가 적절하다.” 직업명을 단정하기보다 작품에 실제로 나타난 행동을 먼저 제시한 점이 달라졌다. 부산남산동국어과외 수업에서도 이처럼 표현의 뜻을 따로 외우기보다, 그 표현이 놓인 장면과 연결해 화자를 확인하도록 했다.
단서 일부를 가린 새 장면
며칠 뒤에는 같은 시를 반복하지 않고, 화자와 상황이 달라진 자료를 제시했다. 이번에는 보기의 근거 일부를 가린 채 다음 시를 읽게 했다.
새벽 버스의 유리창에
시장 불빛이 길게 흔들린다.
나는 빈 바구니를 발밑에 놓고
마지막 손님의 말을 떠올린다.
집에 돌아가면
젖은 저울부터 말려야 한다.
학생은 ‘새벽 버스’, ‘빈 바구니’, ‘젖은 저울’에 동그라미를 쳤다. 처음에는 화자를 시장에 다녀온 손님이라고 적었지만, ‘마지막 손님’이라는 말과 ‘저울을 말린다’는 행동이 서로 맞지 않는다고 스스로 지웠다. 이어 “화자는 물건을 팔고 돌아가는 사람이다. 저울은 손님이 아니라 판매자가 사용하는 물건이고, 빈 바구니는 장사를 마친 뒤의 상황을 보여 준다”고 설명했다.
이 독립 문제에서는 앞의 시에 나온 학교나 교사라는 단서를 가져오지 않았다. 또한 정답을 먼저 보고 맞추지도 않았다. 학생은 표현 하나를 사전 뜻으로 끝내지 않고, 그 표현이 주변의 시간·행동·대상과 함께 누구를 가리키는지 다시 확인했다.
도움 없이 작품 안에서 확인한 최종 판단
마지막 검증에서는 보기와 힌트를 주지 않고 다음 작품만 제시했다.
우편함 속 계절이 바뀌는 동안
나는 같은 골목을 세 번 돌아
파란 문 앞에 봉투를 놓는다.
누군가는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오늘도 대답은 듣지 않는다.
학생은 ‘우편함’, ‘봉투’, ‘파란 문 앞에 놓는다’에 밑줄을 그은 뒤 이렇게 말했다. “화자는 편지를 전달하는 사람이다. 봉투를 문 앞에 놓고, 같은 골목을 반복해서 돌며, 대답을 듣지 않는다는 행동이 우편물을 배달하는 사람의 위치와 맞는다. 단순히 그 집에 사는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번에는 누구인지 묻는 보기도, 선택지를 좁혀 주는 설명도 없었다. 학생은 정답 이름보다 먼저 작품 속 행동을 제시하고, 그 행동이 화자의 정체를 어떻게 드러내는지 설명했다. 시적 화자를 판단할 때 필요한 것은 화자에 대한 배경지식을 덧붙이는 일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실제로 한 행동과 주변 상황을 작품 안에서 연결하는 것임을 스스로 재현한 순간이었다.